한 잔의 커피에는, 커피 볶는 과정이 우선한다. ‘로스팅(Roasting)’ 혹은 배전(焙煎)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煎(달일 전)’이라는 단어가 드러내듯, 로스터에겐 마음을 졸이거나 애태우는 과정이다. 마음을 들들 볶는다고 잘 될 일도 아니요, 애를 덜 쓴다고 안 될 일도 아니지만, 한 잔의 커피를 추출하기에 앞서 로스팅은 수양을 쌓는 방편이기도 하다. 커피콩의 성격에 맞춰, 커피 마시는 사람의 취향 혹은 가게가 드러내고 싶은 정체성 등이 로스팅에 스며든다. 어떻게든 볶는 사람의 마음도 덧붙여진다.
그러니, 번갯불에 콩 볶듯 로스팅을 한다면, 그건 커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볶기를 잘해야 커피콩이 살고, 커피가 산다. 나도 산다. 아무리 좋은 커피콩이라도 볶기에 실패하면, 그 커피는 ‘꽝’이다. 그러니까, 볶는 것은 기술이면서 마음이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온도에서, 열 조절은 어떻게, 로스팅 강도 등등을 결정하는 건, 고차방정식과 다름이 없다. 커피 볶기는 그렇다. 끊임없는 선택의 결과다. 인생과 다를 바 없는.
키 보이스는 지금의 남자 아이돌 못잖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당대의 보이밴드였습니다. 1963년 결성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멤버 교체가 잦았던 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초기 멤버들이 다 빠져나가는 바람에 부침이 심했던 전설적인 록 밴드이죠.
키 보이스는 1963년 창단됐습니다. 밴드 결성을 주도한 것은 당시 미8군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윤항기. 주로 드럼파트를 맡던 그는 옥성빈(리듬기타), 차도균(베이스), 유희백(보컬), 김홍탁(리드기타)과 함께 5인조 밴드를 결성하면서 ‘키 보이스’란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죠.
그런데 밴드 이름이 왜 하필 ‘열쇠 소년들(키 보이스)였을까? 그 연유는 리더 윤항기가 그 직전까지 미8군에서 주로 ‘락앤키(Rock&Key)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락앤키는 원래 가수 송달영의 딸인 송영란의 세션맨으로 출발한 연주 그룹이었습니다. 송달영의 미망인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게 된 딸 송영란의 매니저를 맡아 실력 있는 연주인들을 붙여 주었는데 그 세션맨들의 애칭이 바로 ‘키(Key)’였죠. 윤항기는 이때 송영란의 노래 반주를 돕던 세션맨의 일원이었습니다.
처음 자영업에 뛰어들었던 주인장의 패기와 숙련의 시간이 변질되고 무너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지요.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한 모습이 응축되어 있어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분명 그 변화의 모습에는‘자본주의가 다 그렇지, 뭐’라고 편하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안타까운 생각을 버리기 어렵더군요. 우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주인의 모습은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무척 철학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뜬금없는 철학 타령이라고 할지도 모르나 철학이란 게 꼭 알아듣지 못하는 두꺼운 서적 안에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어떤 두꺼운 철학 서적의 인생론보다도 주인아저씨의 표정의 골은 깊었습니다.
식당 주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았습니다. 고심 끝에 가격을 내리고, 그것마저도 여의찮아 가게를 반으로 쪼개기까지 괴로운 시간을 경험한 것은 어쩌면 이 식당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수익을 더 창출하려는 식당 주인의 욕구를 부정하거나 탓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탐내거나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했던 욕심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건 그냥 욕망입니다. 좀 더 잘 하고 싶다는 욕망. 자기애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감정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욕망을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합니다. 식당이 본래의 모습대로 유지되기를 바랐던 것 또한 제 욕망입니다. 이 식당 주인의 결정은 단순한 욕망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더 복잡하고 철학적으로 보입니다. 임대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가게를 내놓는 자영업자들의 고민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영업을 해오던 기존 가게의 공간을 쪼개면서까지 영업을 이어가려는 식당 주인의 생각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사람에게까지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이지,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더보기] https://www.cafein21.co.kr/heart/11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