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둘러싸고 종횡무진 오가는 생각이 커피 향에 묻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날도, 가장 절망했던 날도 여름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름은, 우리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여름입니다. 비록 올여름, 폭염과 꿉꿉함에 처진 달팽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갔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내년에는 내년의 여름이 다가올 겁니다.
내년 여름께, <밤9시의 커피>에는 이렇게 써놓으려고요. “준비는 되어 있어. 자, 네 차례야.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내자.” 그렇게 만화 《릴리프》가 부추겼듯 말이죠. 아, 그리고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잊지 못할 휴일을 보낸 계절도 여름이었답니다. 커피가 좋은 계절, 여름. 사랑하기 좋은 계절, 여름. 자, 우리 모두의 차례야,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내자.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여름을 기다립니다.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요즘의 저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은 더더욱 하지도 않고, 할 생각도 않습니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에 지쳐서 그런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탐닉하던 꽃들이 질 자리를 한 번도 살펴보거나 비를 들어 쓸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갈 자리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죠. 함께하는 시간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제 깜냥을 알아차렸다면 이제는 스스로 반성해야 할 시간을 알아차려야 할 순간임을 느낍니다. [더보기] https://www.cafein21.co.kr/heart/12515
[잘 읽은 책 한권]
메인테이너에게 갈채를 _ 《사람의 자리》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하지만 혁신가가 앞에서 주목받고 지원받고 성공하는 동안 메인테이너는 뒤에 남겨지고 잊히고 사라지기 마련이다”(전치형, 《사람의 자리》, 2019, P72~73)
파괴적인 혁신이 강조되는 이때, 하루하루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메인테이너들은 무대의 뒤편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선행연구자들의 땀과 노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타낸다. 혁신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메인테이너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이유이다.
영어로 빠르다(express)는 뜻의 에스프레소는 강한 압력을 가해 빠르게(30초 이내) 추출한 커피이다. 에스프레소 전용 잔인 데미타세(demitasse)에 담는다. 원두의 액기스가 오롯이 담긴 에스프레소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커피의 맛을 선사한다. 30㎖의 작은 양이지만 오감을 자극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20여 년 전부터 하나 둘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에스프레소의 고장, 이탈리아 커피가 있었다.
전한애프앤씨(주) 송창윤 대표에게 에스프레소는 커피사업을 시작한 동기이자 20여 년간 품어온 정체성이다. 1997년부터 이탈리아 선두 커피 브랜드, 라바짜(LAVAZZA)를 수입해 인스턴트커피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커피의 참맛과 문화’를 전파해왔다. 갖은 난관에도 꿋꿋이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의 전차를 운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