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를 말할 때 수식어처럼 붙는 말이 메디치입니다. ‘피렌체가 메디치를 낳았지만, 메디치 없이는 피렌체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의 인문 예술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집안의 이름을 딴 ‘메디치 효과’라는 경영학 용어도 있습니다. 무관해 보이는 영역의 지식이 잘 합쳐지면 혁신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 (중략) /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 (중략) /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 (중략) /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_ 김광규, <생각의 사이> 중
각자의 역할만 충실하면 사회가 원만하게 진보할 것 같아도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다면 억압이 가해질 수 있으며, 통계가 보여주는 표면적인 성장만 이룰 수 있다고 시인은 역설합니다. 진정한 사회의 통합과 발전은 다른 것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코코넛은 코코야자라고도 하는데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 자생한다. 즙은 그대로 마시며 안쪽에 붙은 흰색 과육을 물과 함께 끓이면 코코넛 밀크가 된다. 과육을 말린 것은 코프라(copra)라고 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표류 초기에 코코넛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코코넛 안에 물이 들어있다는 건 알고 있기에 그는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땄다. 그런데 딱딱한 껍질을 깨는 건 쉽지 않았다. 힘겹게 코코아열매를 깨서 즙을 들이킨다. 그는 난생처음 코코넛을 깼고 생명수를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니 비로소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게 된다. ‘살아야 남아야 한다.’ 그는 불 피우기, 낚시 등을 스스로 익히기 시작한다. 코코넛을 깬 것은 삶의 의지를 일깨운 행위였던 셈이다.
메리 조 맥케이브가 쓴 《코코넛 깨뜨리기》는 코코넛처럼 두껍고 딱딱한 내면의 껍질을 깨뜨려 참된 자아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누구나 코코넛 속살을 먹고 싶어 하지만 딱딱한 껍질을 깨지 않고 누가 깨주기만 바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코코넛을 스스로 깨야 한다.”
직접 구운 도자기 잔에 담아주는 카푸치노. 한 모금을 머금은 채,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잔의 빛깔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애써 다잡았던 마음의 형상이 흐트러진다. 위로받지 못했던 마음을 어루만진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채비를 마친 사람의 작업은 매몰되지 않기 때문이며, 그 말미에 온전히 자신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와 라떼엔 맛있는 원두와 물, 우유가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여기엔 오랫동안 커피와 호흡하며 달려온 지난날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바리스타 대회 우승자였던 신채용 대표는 그간 다양한 커피를 다뤄왔던 만큼, 이젠 덜어내고 비워내기를 반복하며 기본에 충실한 커피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