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언제 수확할까?’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이런 질문에 바로 답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는 우리나라처럼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겐 어려운 질문이지요. 커피나무는 겨울이 없는 열대-아열대 지역(남, 북위 25도; 커피밸트)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열매는 겨울을 앞두어야 맺는 건 아닙니다. 겨울이 없지만 커피나무 열매의 주 수확기가 있습니다. 이를 ‘제철 커피’라 부릅니다.
얼마 전 농사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기이한 농부를 취재했는데, 그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그는 지금의 자살 문제 등의 소외 문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농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부터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도시에 살아도, 외가 친가가 시골에 있어서 방학 동안에라도 농촌을 경험했고, 그도 아니면 농활이라도 갔다는 거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땅이란 대지의 품을 경험할 수 없었으며, 그 때문에 피폐해진 자신을 어쩌지 못해 죽음에 쉽게 자신을 내던진다는 주장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름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역시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 자하문 밖에서 산 덕에 앵두 따먹던 기억, 농활 가서 고생 고생 담배를 따던 경험이 나의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농사를 경험한 기억도 이럴진대, 농산물을 직접 키우고 그것으로 음식이란 걸 만드는 요리사들에게 그 경험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물음표가 새로운 기획을 하게 했다. ‘농사짓는 요리사’였다.
‘봄이 활짝 폈다’는 소식을 장식하는 건 벚꽃이다. 3월 중순 제주도부터 시작해 한반도는 벚꽃 잔치가 열린다. 만개한 벚꽃 길을 걸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파란 하늘, 적당히 부는 바람, 따뜻한 감촉, 흩날리는 꽃잎, 밝게 웃는 사람들. 나는 저기에 끼지 못하는구나, 젠장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지. 외로움은 깊어지고, 맘속 구멍은 커진다. 숨을 들이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란.
600년 전 어느 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말 학자인 길재(1353~1419)의 시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봄을 맞은 산천(山川)은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한다. 그 산천을 앞에 두고 망해버린 고려 왕조 5백 년의 무상함을 고려 유신은 무엇으로 달랬을까. 생각해보면 그 망연자실함이 얼마나 아득했을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사를 대비하며 그가 느꼈을 봄의 숨결을 심호흡하듯 느껴본다. 같은 봄이지만 사람마다 느낌과 감회는 다르기 마련이다. 한국 현대시에서 또렷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세 명의 시인들은 이 봄을 어떻게 느끼고 시로 옮겼는지 살펴본다. [더보기] https://www.cafein21.co.kr/library/13116
[디카시]
그대가 꽃 필 차례
기다리는 일은 꽃을 피우는 일이다. 뿌리에서 줄기, 잎까지 그리고 몽우리가 맺히는 시간까지. 이제 그대가 꽃 피울 차례
사진. 시 | 권지영
출처 | <빈터문학회지> 16호(20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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