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에 더 유명해진 비운의 가수
낙담한 유재하는 자비 제작을 결심하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서울음반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이다.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수차례 심의가 반려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87년 8월 발매된 이 앨범에는 총 9곡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 연주곡인 ‘미뉴에트’를 포함해 모두 유재하의 자작곡이었다. <우울한 편지> 역시 이 앨범의 여덟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 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질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 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
한 줄 한 줄 또 한 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 가요 아는 가요 내겐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안타깝게도 수록곡 대부분은 독특하게 변조된 코드진행 때문에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노래가 이상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이 때문에 이 비운의 음반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가 싶었다. 그리고 첫 앨범이 나온 뒤 3개월 만에 일어난 가수의 안타까운 죽음….
그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작이 된 데뷔앨범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가식 없는 목소리와 정제된 멜로디, 이질적이면서도 편안한 ‘유재하 음악’의 진가를 알아본 대중들은 뒤늦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울한 편지>는 그 중에서도 타이틀곡인 <사랑하기 때문에>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었다. 2003년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의 전주곡으로 차용되었지만 <우울한 편지>는 애틋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훗날 그와 절친했던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는 그가 대학 1학년 때 만난 한 여대생의 편지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첫사랑 여인에게 편지를 받은 청년 유재하의 불안과 머뭇거림이 단아한 목소리에 실려 가슴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