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 매몰된 221시간의 깊이와 길이를 가늠할 수 있을까요. 작년 기적처럼 생환한 박정하 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시 3편을 읽어봤습니다. 성장소설 두 편을 통해 성장의 의미 새삼 떠올려봅니다. 베트남식 커피 내리기, 핀 드리퍼를 소개합니다.☕
[인간극장] 광부의 하늘
‘봉화 아연 광산’ 박정하의 221시간
전국 돌아다니며 밥상 구경하는 프로그램에 와서도, 참 뜬금없는 기획을 많이 했다. 지난해 가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나라는 온통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뭔가로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 하고 싶었다. ‘무엇이 위로가 될까’ 온통 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던 때였다.
어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와의 인터뷰를 듣게 됐다. 주인공은 이태원 참사가 있기 3일 전 봉화 아연 광산에 고립된 광부 박정하 씨였다. 후배 광부와 함께 지하 190m 수직갱도 아래서 만 9일하고도 5시간 만에 생환한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암울하기만 했던 세상 분위기를 한순간 바꾸어 놓은 그나마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감동했던 건 구조됐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의 확신에 찬 한마디가 내 마음을 두들겼다.
“누군가 구조하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 안하셨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걱정을 안 하죠?” “저희는 동료가 갇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러 갑니다.” “광부들은 그렇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광부들을 그럽니다.” [더 보기] https://www.cafein21.co.kr/allarticle/10824
[문학산책] 여름을 떠나보내는 시 3편 백일홍에 머물다 옥수숫대를 빠져나온 매미소리
자연의 대표적인 질서는 계절이다. 통념에 갇힌 여름의 이미지는 언제나 뜨겁고 햇볕이 쨍쨍하기 마련이다. 또한 여름은 결실과 완성을 위해 담금질이 절정에 달하는 성장의 시절이다. 그러나 과연 이 시절이 그렇기만 할까? 소나기가 이어져 폭우가 되고, 지반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성장이 있는가 하면 소멸도 있고, 빠져 죽는 죽음도 있고, 말라가는 죽음도 있다.
좋은 시는 성장과 소멸 사이를 들여다볼 줄 안다. 어떤 시인은 한여름 매미의 울음소리에서 사랑의 서늘함을 읽고, 한여름 폭풍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정신을 읽는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절기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여름이 끝나가는 것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처서의 풍경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시인도 있다. 세 편의 시를 읽다 보면 여름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듯하다. [더 보기] https://www.cafein21.co.kr/allarticle/10842
[인문학카페] 성장소설로 되돌아본 ‘성장’
항아리에 갇힌 소년과 조숙한 소녀의 세상 대처법
소설가 김소진(1963~1997)의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는 성장소설의 재미와 여운을 함께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작가가 모두 피우지 못한 소설적 저력을 생각하면 그 이후의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쉽기만 합니다. 등단작인 <쥐잡기>부터 성장소설의 성격을 보여준 작가의 작품 목록 중에서 이 소설은 특히 아름답습니다. 문학을 이야기할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는 소설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갑자기 닥친 한파에 보일러를 수리할 비용을 보내달라는 세입자의 연락이 나에게 옵니다. 수리비를 핑계 삼아 어린 시절 살던 미아리 집을 찾아가는 중 아홉 가구가 모여 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어느 겨울밤, 주인공 ‘나’는 오줌이 마려워 새벽에 변소를 다녀오죠. 어두컴컴한 가운데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무섭기로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의 짠지가 들어 있는 항아리를 깨뜨려 버립니다. 혼이 날 것을 두려워 눈사람을 만들어 깨진 항아리를 감추고는 가출을 감행합니다. 하루 종일 바깥을 쏘다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른들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나는 당혹감에 울어 버리고 이 세계가 너무 낯설고 당혹스러워 어딘가를 향해 가슴이 터지라고 달립니다.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미아리 산동네의 빈집에서 절반쯤 깨진 큼직한 항아리를 보면서 어른이 된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지탱해주던 이 동네가 사라진다는 슬픔에 빠집니다. [더 보기] https://www.cafein21.co.kr/allarticle/10863
[브루잉의 세계] 핀 드리퍼(Phin Dripper)
커피가 연유를 만났을 때
핀 드리퍼로 추출한 커피와 연유를 섞은 아이스 핀 커피는 베트남 특산 음료이다. 베트남이 프랑스 지배를 받던 때에는 가당 연유가 흔했다. 일반 우유는 더운 날씨에 상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베트남 아이스커피는 시원함과 함께 농축우유의 쫄깃함까지 느끼게 하는 단맛과 다크 로스팅한 커피의 스모키한 향미와 잘 어우러진다. 베트남은 로부스타 커피 강국으로, 쓴 맛이 강한 로부스타 커피에 연유의 단맛은 마치 해독제와 같다. [더 보기] https://www.cafein21.co.kr/allarticle/10815